엘시어스는 입고 있던 드레스를 마구 벗어던졌다. 옷이 구겨지거나 찢기는 건 신경 쓰지 않았다. 당장 그 마마보이의 손이 닿았던 천을 다 뜯어내야만 더러움이 묻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왜 그딴 소리를 듣고 있어야 해?!” 롤드컵베팅 쌍으로 꼴 보기 싫은 얼굴들을 보며 몸을 떨었다. 하는 소리가 가관인데, 사기당한 건 오히려 그녀였다. 황태자의 편에 서리라 마음먹고 나서야 그놈에 대한 소문을 접할 수 있었다. ‘사람 많은 곳에서 방귀를 뀌면 희열을 느낀다면서?’ 뭐 그런 변태 새끼가 다 있는지! 겉이 꽤 번드르르하게 생겨서 나쁘지 않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심각한 하자를 안고 있었다. “정력 달리는 마마보이 새끼.” 우욱. [얘 왜 이래?!] 엘시어스가 토하는 시늉을 하자 오닉스가 구석으로 도망쳤다. ‘저놈의 토끼, 그냥 발로 차버릴까?’ 순간 충동이 들었지만 그녀는 이번에도 참고 넘겼다. 지금 가장 짜증나는 건 바로 늙은 여우였다. 원래 마마보이의 위에는 그만한 어미가 있는 법이었다. “나가면 안 되긴 뭐가 안 돼. 그럼 그 자리에서 사람 하나 찌를까?” 엘시어스가 자리를 박차고 나간 건 수습하지 못할 사고가 생길 것 같아서였다. 간신히 참기는 했지만 실제로 그 자리에서 과일용 나이프를 손에 쥐고 있었다. 자칫 휘둘렀다가는 그날로 모든 게 끝이었다. 잘 참았다고 홀로 다스리고 있었는데 예법을 다시 배우란 소리나 듣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황제도 마찬가지야. 이것도 그래, 저것도 그래라 하더니 갑자기 노망이 든 거야, 뭐야.’ 엘시어스는 때와 장소에 맞게끔 연기를 했다. 그런 늙은이한테는 주로 어리광쟁이 손녀 연기가 가장 잘 먹혔다. 공작성에 머문 것도 황제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순간 배신을 때렸다. 때문에 뒤통수가 얼얼했다. ‘가만 안 두겠어.’ 그년이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황제의 마음을 다시 사로잡아야 한다. ‘그래야 황후도 쳐내고, 그 변태 새끼도 없앨 수 있으니까.’ 일단 보기 싫은 건 다 쳐낼 작정이었다. ‘제일 중요한 것만 지키면 돼.’ 그놈의 원작. 카샤르가 전쟁을 일으키고, 미카엘이 황제가 되어 자신과 결혼하는 것. 그 큰 줄기만 지킨다면 모든 건 그녀의 것이었다. ‘원작이 지나면 내가 황제가 되어야지.’ 그럼 모든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루나티에가 되어야만 한다. 가까스로 진정한 끝에, 엘시어스가 문 너머로 명령했다. “페르베로프 대신관님 들어오라 그래.” 늦은 밤을 넘어 새벽까지도 그녀의 움직임은 계속되었다. *** 건국제 사흘째 날 오전. 나는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목걸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그대로였던 마력이 갑자기 한 계단 더 상승해 있었다. ‘이제 두 칸만 더 차면 완성이야.’ 잘된 일이었다. 나도 어서 빨리 드누아르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갑작스럽게 마력이 상승한 이유가 궁금했다. [빙의자는 이질적인 마력 그 자체니깡.]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겠다는 듯, 하양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무슨 말이야?” [네 명성에 따라서도 마력이 올라간다는 뜻이양.] 그럴듯했다. 결국 외부의 마력을 쌓는다는 건 빙의자가 이 세계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느냐에 달렸으니까. ‘그렇다면…….’ 나는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원래 엘시어스가 차지해야 할 황제의 지지는 내 것이 되어 있었다. ‘가능성이 있어.’ 루나티에가 된다면 목걸이의 마력을 다 채울 수 있을지도 몰랐다. 오늘부터 5일간 사교제가 시작된다. 루나티에가 될 자격을 얻기 위해선 최소 3일간 의무 참가해야 했다. 만약 귀족들의 표심에서 루나티에 후보가 두 명이 된다면 그때는 또 다른 경합이 벌어지게 된다. ‘요리 대결이라니.’ 그것도 황제와 귀족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치러지는 것이었다. ‘표를 얻는 것으로 끝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 편이 훨씬 깔끔했으니까. 결심한 나는 카샤르에게 다가갔다. “카샤르. 황성에 더 머물러야 할 것 같아요. 루나티에 자리가 필요해졌거든요.” 그도 나와 하양이의 대화를 듣고 있었으니 어떤 말인지 이해할 것이었다. “원하시는 대로.” “드레스를 넉넉히 만들어 놓길 잘했어요.” 하마터면 의무 참가를 못할 뻔했다. 다섯 벌 중 세 벌이 남아 있으니 그걸 입으면 되겠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다섯 벌이 아니라, 스무 벌이야.” “네?” “내가 그렇게 시켰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