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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타
작성일23-10-24 00:30 조회1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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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데일은 침을 꿀꺽 삼켰다. 어두운 루카스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코끝이 시큰했다. 그런 때에 에로스가 머뭇머뭇 대화에 들어왔다. “아가, 그게……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에로스 님. 현신하셨네요?” “아, 그래.” 잠시 머뭇거림을 멈춘 에로스는 로즈데일의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다정히 넘겨 주었다. “루카스 몸에 있던 왕이 마계로 돌아간 모양이야. 덕분에 인간 세계에 다시 신력이 돌아오기 시작했지.” “…….” 잠시 생각하던 로즈데일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럼 그렇지. 한 방울 눈물이 또르르 구슬프게 떨어졌다. “역시, 이건 꿈인 거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나 완벽한 결말이 있을 수가 없다. 세계수가 루카스와 동시에 그녀도 살려 줬다고? 거기다가 그의 몸에 있던 마족 왕은 원래 있던 자리로 다시 돌아갔고? 역시 꿈인 게 틀림없다. 로즈데일은 이 꿈에서 깨기 전에 루카스를 원 없이 보려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겨우겨우 손을 들어 그의 볼을 만져 보았다. 보드랍다. 너무 현실감 있는 꿈이라 더 눈물이 났다. 줬다 뺏기는 기분이라서. “로지. 꿈이 아니야.” 루카스가 제 볼을 쓰다듬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우리 모두 살아 있어.” “……?” 뭐가 뭔지 어리둥절하기만 한 순간, 드디어 거짓말을 하지 않아 줄 인물이 앞으로 나섰다. “로즈데일.” 엘피스였다. “세계수가 대가로 가져간 건 너의 죽음이 맞다.” 그는 새빨간 눈시울로 힘겹게 말했다. “정확히는 요정으로서의 네 죽음이지.” “……네?” 눈이 동그래진 그녀에게 루카스가 미소로 대답했다. “인간이 된 소감이 어때, 로지?” “인……간?” 내가, 인간이라고? 복슬복슬한 베이비핑크 머리카락은 그대로였다. 몸도 키도 전부 요정 때의 모습인데, 내가 인간이 됐다고? 그러고 보니, 몸에서 마나가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신의 사자로서 받은 신력조차 없었다. “…….” 로즈데일은 뻣뻣하게 굳었다. 그날 세계수 앞에서, 요정왕의 딸이자 사랑의 사자는 정말 죽은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루카스의 아내이자 아이브리아의 황후가 살아남았을 뿐이었다. 로즈데일의 눈이 루카스를 향했다. 인간이 되었단 사실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루카스와 함께할 미래였다. “그럼 이제 우리도 같이 늙어 갈 수 있겠다.”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뤄, 머리가 하얗게 세어도 함께 손을 잡고 정원을 산책할 우리.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할까. 그건 요정으로서의 긴 시간을 포기할 만큼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로즈데일이 웃어 주자 루카스도 그제야 입꼬리를 올릴 수 있었다. 요정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했던 그녀를 알기에 걱정했던 그는, 그제야 한숨 놓은 듯 그녀의 손바닥에 키스했다. 방긋이 미소 짓던 로즈데일은 이내 표정을 굳히고 엘피스를 바라보았다. “죄송해요, 아버지.” 유일하게 걸리는 사실이었다. 요정으로서의 삶이 끝난 게 그녀에겐 조금 아쉬울 뿐인 일이라면, 엘피스에겐 진짜 죽음과 다르지 않을 테니까. “죄송하다면 한 가지 약속하거라.” 눈을 부릅뜬 엘피스가 윽박, 아니, 부탁했다. “네 몸이 죽은 후엔 요정계에 묻히겠다고.” “네?” “내가 말하지 않았나? 앞으로도 내 아이이자 후계자는 오직 너뿐이라고.” “그래……서요?” “몇백 년쯤 요정계의 정기로 순환해 주면 다시 요정으로 태어날 수 있을 거다.” 흠, 하고 콧김을 내뿜는 엘피스의 표정이 뿌듯하다. 좋은 해결책이라는 듯이 그의 쫙 펴진 어깨가 자신만만했다. 잠시 벙해 있던 로즈데일은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방금 되살아난 요, 아니, 인간에게 하실 말씀이에요?” “아가. 엘피스는 그저 네가 돌아와 기쁘다는 말을 한 거야.” 에로스가 수습하면서 엘피스를 팔뚝으로 쿡쿡 찔렀다. 엘피스는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듯 가만 서 있을 뿐이었다. “도대체, 요정들 감정 표현 방식은 왜 이 모양인지.” 사랑의 신으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에 에로스가 고개를 내젓는 사이. 곧바로 적응한 로즈데일은 루카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는 루카스 없이는 요정계에 묻히지 않을 거예요. 요정으로 태어나면 루카스를 다신 못 만나잖아요.” “그럼 인간의 왕도 죽여서, 아니, 죽은 후에 함께 묻히면 되겠군.” 엘피스의 빤한 시선도 루카스를 향했다. 인간은 감히 발을 디딜 수 없는 요정계에 묻히게 해 주겠다는데, 설마 거절하는 건 아니겠지? 무언의 압박이 담긴 시선이었다. 이 순간 케인은, 황제와 황후가 아이브리아가 아닌 다른 곳에 묻힐 순 없다며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지만, 입술을 꾹 다물었다. 도저히 저 엘피스의 말에 반기를 들 순 없었으니까. 둘의 무덤엔 루카스의 검과 로즈데일의 반지라도 대신 묻어 두지, 뭐. 그렇게 모든 시선이 루카스에게 쏠렸다. 품 안에선 로즈데일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대답을 재촉했다. “루카스. 나랑 같이 묻힐 거지?” 살벌한 말을 해사하게도 하는 로즈데일의 모습에 결국 루카스는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졸지에 사후까지 프러포즈 받아 버렸지만, 대답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물론이지.” “……!” 로즈데일이 활짝 웃으며 루카스의 목을 껴안았다. 그녀의 등 뒤에 감긴 그의 손이 무척이나 단단했다. 앞으로도 다신 놓지 않을 것처럼. 감동의 순간은 언제나 이렇게 날마다 새롭게 경신한다. 행복도 그렇겠지. 인간으로서의 미래가, 루카스와 함께할 시간이 그렇게 만들어 줄 테니까. 하지만 지금 당장엔 이 말을 꼭 해야겠다. “아니, 근데, 인간들은 이 무거운 몸으로 대체 어떻게 사는 거야?” * * * “누나. 필리페 누나!” 막냇동생이 필리페의 옷자락을 쭉쭉 잡아당겼다. “앤디. 누나 바쁘다니까?” 필리페는 아직 어린 동생을 안아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떠들썩한 야외의 축제 현장. 우글우글 모인 사람들로 인해 대화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뿔뿔이 흩어진 다른 동생들과 부모님을 찾아내기란 힘들었다. 막내 좀 잘 챙기라니까. 필리페는 하는 수 없이 일하다 말고 동생까지 돌볼 수밖에 없었다. “앤디. 누나 목에 잘 매달려 있어야 해. 알았지?” “응!” 동생을 등 뒤에 대롱대롱 매달아 두고 일하려던 그때, 누군가가 아이를 대신 안아 갔다. “앤디, 너 또 누나 귀찮게 하고 있었구나?” “토드!” 깜짝 놀란 필리페를 향해 토드가 웃으며 익숙하게 앤디를 안아 들었다. 아이도 자연스럽게 토드의 어깨에 매달리고 장난을 쳐 댔다. “아니야, 누나가 앤디 귀찮게 한 거야!” “앤디. 귀족한테 그렇게 반말하다가 너 큰일 난다? 저기, 무섭게 생긴 아저씨가 잡아가면 어쩌려고?” 필리페가 겁을 주자 앤디는 얼른 조그만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러다가 뭔가 이상했는지 볼에 바람을 잔뜩 넣어 부풀리며 필리페를 째려보았다. “누나도 하잖아!” “누나는 괜찮아. 그래도 되는 사이거든. 그렇지, 토드?” “그럼. 필리페는 다 되지.” 토드가 입술을 쭉 빼고 다가오자, 호호 웃던 필리페가 갑자기 정색했다. “또 사람들 많은 데서 뽀뽀하기만 해 봐. 명치를 차 버리려니까.” 멈칫! 브레이크 걸린 토드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씩 웃었다. “뽀뽀 정도면 명치 정도는 내어 줘도 될 것 같기도 하고?” “……!” 얼굴이 새빨개진 필리페가 토드의 등짝을 후려쳤다. 아프다고 몸을 배배 꼬는 척 그녀의 볼에 쪽 입 맞추는 그 때문에, 필리페의 열은 도통 내릴 것 같지 않았다. 갑자기 둘이서 때리고 웃고 좋아하는 두 사람을 보고서, 앤디는 에휴, 한숨을 쉬었다. 어른들이란. “둘 다 일 안 할 거예요?” 막스와 브릴리아가 성을 냈다. “안 그래도 축제 중이라 정신없는데, 두 사람마저 이러기 있어요?” “그래요. 빨리빨리 하고 우리도 축제 좀 즐깁시다. 네?” “흠흠. 죄송합니다.” 두 사람이 서둘러 다가와 브릴리아와 막스를 도왔다. 그들이 오늘 밖에 나온 건 추모비를 세우기 위해서였다. 전쟁이 없었더라면 지금쯤 이 축제를 함께 즐기고 있었을 수많은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마법으로 만든 추모비는 만질 수 없는 영상으로, 희생자들의 이름이 계속해서 재생되게 해 두었다. 초상화가 있다면 그것도 함께 넣어서. “자, 끝으로 다들 묵념합시다.” 추모비를 완성하고 필리페와 사람들이 두 손을 모았다. 부디 모든 이에게 평안이 깃들기를. 그리고 이제 또 다른 작업을 하러 갈 차례였다. “우린 언제쯤 이런 잡무에서 벗어나지?” 토드가 앤디를 안고 투덜거렸다. “우리도 이제 이런 거 그만할 짬밥은 되지 않았어?” “마법부 신입들이 전부 제 몫을 하는 날? 근데 그런 날이 오긴 할까?” 막스마저 한숨을 내쉬며 분위기를 다운시켰다. 인기 많은 마법부엔 지원자가 많은 만큼 가르쳐야 할 인원도 늘어 일거리만 더 많아졌다. 언젠가 그들도 제 몫을 하게 되면 좀 괜찮아지겠지만, 그런 날이 언제나 올는지. 갑자기 침울해진 분위기 속에서 브릴리아가 필리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필리페, 황후 폐하의 시녀로 들어간다죠?” “아, 네. 토드랑 결혼하려면 그럴듯한 신분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요, 황후 폐하께서 손써 주시기로 하셨어요.” “부럽다…….” 브릴리아의 속마음이 그대로 터져 나왔다. 본래 황후의 시녀는 백작가 이상의 귀부인이 맡는 게 관례였으나, 필리페는 황실에서 자랑하는 마법부의 초창기 구성원이라는 점으로 특혜를 얻었다. 브릴리아도 자원했으나 떨어졌다. 마법사는 황실 주요 인재라 안 된다나. “브릴리아 님은 이미 마법도 쓸 수 있으면서 황후 폐하 옆자리까지 탐내세요? 욕심도 많으시지.” 필리페가 킥킥거리면서 브릴리아의 팔짱을 꼈다. 체념한 브릴리아도 힘없이 웃으며 다 스타베팅 걸음을 옮겼다. 8개월 전, 무너진 건물 사이로 신발이 벗겨진 줄도 모르고 달려야 했던 거리. 이제 이곳을 뛰어다니는 건 아이들의 까르르한 웃음소리와 사람들의 시끌시끌한 대화뿐이다. 이곳에 놓인 삶과 죽음 사이에서 타인의 구원을 택했던 네 사람은 잠시 말없이 길을 걸었다. “누나. 우리 어디가?” 토드 품에 안겨 하품하던 앤디가 물었다. “응, 다음 일 하러.” “그게 뭔데?” “축제 마지막 날 있을 퍼레이드를 준비하는 거지.” 며칠 후면 이곳에서 성대한 행진이 있을 예정이다. 금빛 마차에 올라탄 황제와 황후를 보기 위해 아이브리아 전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겠지. 서로를 살리기 위해 희생했던 두 사람의 이야기가 온종일 이 거리를 울릴 것이었다. 뭐, 그 이야기는 굳이 축제가 아니더라도 어딜 가나 지겹게 들리긴 하지만. “이번 퍼레이드는 정말 기대돼요.” 필리페가 새하얀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었다. “나도 마찬가지예요, 필리페.” 브릴리아를 포함한 네 사람이 시선을 맞추며 한껏 즐거움을 뽐냈다. 그럴 만도 했다. 이번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건 황제와 황후 말고도 한 사람이 더 있었으니까. 아이브리아 제국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대했던 그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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